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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by 화이트팔콘 2025. 6. 2.

저는 개인적으로 한반도에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을 딱 하나만 들으라고 한다면, 덕수궁 석조전(德壽宮 石造殿)을 꼽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클래식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서양 건축 양식의 유입과 그에 따른 문화적 전환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클래식한 건축물에 동경심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신고전주의 양식을 바탕으로 설계된 석조전은 한국의 전통 건축과 뚜렷하게 구분되며, 서양과 동양 건축미의 접점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와 관련하여 필자가 직접 촬영한 석조전 전경사진

석조전의 원설계도를 찾아낸 건축공학자 김은주씨에 의하면, 서양 교수들이 말하기를 동양에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팔라디안 양식의 건축물이 있냐면서 놀라워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팔라디안 양식이란,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가 신전·궁전 등의 고전 건축을 모방해 빌라 등을 지은 데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이 팔라디안 양식이 영국을 거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석조전은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축물이자 팔라디안 양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석조전이 지닌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한국 사회 근대화 과정에서의 역할, 그리고 서양 건축 양식의 수용과 표현 방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과 관련하여 필자가 직접 촬영

문화유산으로서의 석조전

석조전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격동의 근대화를 거치며 남긴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현재 덕수궁 내에 위치한 석조전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대 초반에 착공되어 1910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건물은 서양식 석조건물로 지어졌으며,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사 속에서, 국권 수호와 근대화를 함께 상징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닙니다.

석조전은 문화재청에 의해 보존 관리되고 있으며, 내부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운영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내부 관람을 위해서는 예약이 필수적입니다. 예약을 하시면 해설을 들으시면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교육적·문화적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또한 석조전의 존재는 후대에 근대 건축양식을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는 실물 자료로서, 건축사적 연구의 근거가 됩니다.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필자 직접 촬영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필자 촬영

한국 근대화와 석조전의 상징성

근대화란 단순히 기술이나 건축 방식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인식과 사회구조, 생활방식까지 변화하는 총체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석조전은 그러한 변화의 상징으로서 대한제국이 스스로를 세계 속 근대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건물의 설계는 영국인 존 레지날드 하딩(J. R. Harding)이 맡았고, 유럽식 자재와 공법이 사용되어 전통 한국 건축과는 전혀 다른 외형을 보입니다. 석조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둥과 대칭’ 중심의 신고전주의 양식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입니다. 이는 당시 제국주의 열강이 사용하던 권위적이고 장엄한 스타일로, 대한제국도 이에 맞추어 국가의 위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를 내포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석조전은 단순한 건축이 아닌, 국제 질서 속에서 자주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한 국가 이미지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석조전은 오늘날 근대화의 흔적을 반추하고, 당시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어떤 이상을 품었는지 읽을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직접 촬영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직접 촬영

서양 건축 양식의 수용과 적응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한국적 특성과 시대적 한계를 반영하여 완전히 동일한 유럽의 복제본은 아닙니다. 먼저 구조적으로는 석재를 활용한 3층 구조로,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대형 석조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기둥은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의 절충형으로 설계되었으며, 좌우 대칭을 이루는 전면부는 신고전주의의 전형을 따릅니다.

그러나 내부 공간 구성이나 재료 사용 등에서는 당시 한국의 현실적인 제약이 반영되었고, 일부 공간은 전통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독자적인 양식으로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내부의 장식과 가구는 당시 유행하던 아르누보 양식과 절충되어, 유럽 궁정 건축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처럼 석조전은 단순한 서양 건축의 수용을 넘어서, 한국적 현실과 문화적 감수성이 반영된 독특한 혼성 건축의 결과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서양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국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건축적 실험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져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갑니다. 또한 당시 혼란스러웠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석조전의 건축사적 가치 (문화유산, 근대화, 서양양식)

결론

석조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한국 근대사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상징적 문화유산입니다. 그 속에는 문화적 자주성과 국제 감각, 시대적 이상이 동시에 담겨 있으며, 신고전주의 양식의 수용을 통해 한국 건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석조전과 비슷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클래식한 건축물을 짓기는 어렵습니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클래식한 궁전양식의 특징을 꼽자면 화려한 건축 말고도 서양식 정원이 들어서야 하기 대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몇몇 클래식한 건축물이 있기는 합니다만, 석조전만큼 역사적으로도 꽤 오래된 클래식한 실제 궁전은 석조전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