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소개한 영화 '문라이즈 킹덤(Moonrise Kingdom)'과 더불어서 19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하나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2022년에 넷플릭스에서 제작되어 발표된 애니메이션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로, 리처드 링클레이터(Richard Linklater)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마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같은 SF영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역사적인 달 착륙 시점을 배경으로 하며,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링클레이터 감독이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자란 경험을 반영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소년인 스탠(Stan)은 링클레이터 감독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실제로 링클레이터 감독 역시 어린 시절 NASA가 있는 휴스턴 근처에서 자랐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실제 역사와 상상력을 결합하여, 한 소년이 NASA의 비밀 프로젝트로 아폴로 11호보다 달에 먼저 가는 임무를 맡는다는 흥미로운 가상의 설정을 추가하였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같은 SF의 영광스러운 소재를 활용한 역사의 재현과 더불어서, 1960년대 미국 문화와 그들의 대가족 중심의 생활, 그 시대를 살았던 미국인들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독특한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으로 표현한 점이 이 영화의 인상적인 특징입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우주 경쟁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SF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보이지만, 어린 소년의 시선에서 우주 탐사와 1960년대의 후반 미국의 일상을 그려내며, 현실과 상상 사이를 오가는 굉장히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의 시대적 배경과 연출 특징, 그리고 1960년대 미국의 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작품의 매력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영화의 시대적 배경, 냉전 시대와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
1) 냉전 시대와 우주 경쟁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후반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러시아)으로 나뉘어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 국가는 군사력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에서도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고, 이는 '냉전'이라는 거대한 대립 구도로 이어졌습니다.
2) 미국의 위기의식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를 자극하는 우주 개발 역시 이러한 경쟁의 일환이었습니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자본주의의 미국은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소련이 먼저 우주에 진출하면서 이 믿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특히, 소련이 1961년 유리 가가린(Yuri Gagarin, 1934-1968)을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우주에 보내고 그가 직접 우주와 지구를 두 눈으로 보고 남긴 '지구는 푸르다'는 메시지로 인해 미국의 위기의식은 더욱 커졌습니다.
3) 아폴로 계획 발표
당연히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이미 1958년에 NASA(미국항공우주국)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1962년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휴스턴에 위치한 라이스 대학교에서 '우리는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고, 무사히 귀환시킬 것'이라고 선언하며 그 유명한 '아폴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4) 달 착륙 성공과 아폴로 10호의 역할
아폴로 계획은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추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미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과 우주비행사를 배출하였으니,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선언대로,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역사적인 달 착륙에 성공하며 전 세계가 환호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루어진 여러 단계의 테스트 미션도 중요했습니다. 특히 아폴로 10호는 1969년 5월에 진행된 사전 탐사 임무로, 실제로 달 착륙을 수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착륙선과 궤도선의 모든 기능을 테스트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착륙선은 달 표면에서 단 15km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으며, 이후 다시 모듈과 도킹하여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이를 통해 아폴로 11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평가받습니다.
5) 영화 제목의 유래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의 제목이 바로 이 역사적인 임무들에서 유래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년 스탠리는 NASA가 실수로 너무 작은 착륙선을 만들어서, 어린이를 태우고 실험해야 한다는 설정의 가상 이야기 속에서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이는 한 소년의 상상 속 이야기를 현실과 결합하는 흥미로운 장치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2.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독특한 연출
1) 로토스코핑 기법의 활용
영화의 흥미로운 줄거리나 소재만큼이나 굉장히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가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로토스코핑 기법이란, 실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전 작품인 '스캐너 다클리(A Scanner Darkly)'(2006)이나 '웨이킹 라이프(Waking Life)'(2001) 등에서도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바 있습니다. 이 기법을 활용한 덕분에 영화는 꽤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동시에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2) 회상 형식의 서사
또한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나레이션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이는 링클레이터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의 하나로, 관객이 자연스럽게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주인공 스탠의 성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나레이터 잭 블랙의 특유의 미성이 결합되어 직접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러한 회상 형식의 서사 방식은 영화 전체에 따뜻한 감성을 더하는 것만 같습니다.
3) 감독의 어린시절 상상을 기반으로 한 작품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만의 가장 큰 특징은 감독 개인의 어린 시절 기억과 역사적 사건을 조화롭게 엮어 스탠이라는 주인공으로 자신을 나타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영화 속에서 스탠리 본인이 가족 중 유일하게 60년대생이라고 밝히는데, 링클레이터 감독 역시 1960년생입니다. 즉, 링클레이터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실제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으며, 개인의 작은 기억들이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고 훌륭하게 그려내었습니다.
4) 현실과 상상의 경계
영화는 NASA가 실제로 행했던 달 탐사의 거의 실제적인 준비 과정을 한 소년의 독창적인 상상들과 섞어서 보여주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중간중간에 스탠은 NASA의 우주비행사들이 실제로 받는 훈련들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중력 가속도 훈련부터 시작해서 각종 시뮬레이션, 조종 기술들, 심지어 수중에서 살아남는 법이나 사막에서 불시착했을 때 살아남는 법들도 배웁니다. 또한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날, 스탠이 실제로 로켓에 탑승하기까지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스탠이 실제로 NASA의 비밀 임무를 수행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스탠의 꿈이었는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게 풀어가는 방식이 꽤 인상적입니다. 이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통해 영화는 한 개인의 어린 시절에 벌어진 일들과 감성을 조화롭게 엮어내었습니다.
5) 시대적 분위기를 담은 음악과 방송 클립, 사운드
또한 196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그 당시의 음악들과 실제 방송 장면과 음성들을 적절하게 활용하였습니다. 즉, 실제 방영된 뉴스 클립이나 라디오 방송, 광고들, 당시의 팝 음악, 그리고 실제 로켓 발사 장면이나 아폴로 11호가 달에 무사히 착륙하는 장면들이 애니메이션으로 삽입되어 실제 몰입감을 높여갑니다.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3. 영화에 담긴 1960년대 미국 문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는 단순한 우주 탐사 애니메이션 영화가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의 낙관적이고 흥미로운 문화들을 그 당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한 소년을 중심으로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저는 SF 영화인 줄 알았는데 물론 우주나 SF와 관련된 내용들도 분명 나옵니다만, 1960년대 미국의 문화를 다룬 내용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미국이나 영국 등의 문화적인 면들에 일종의 동경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1) TV와 미디어, 영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하선, 음악, 놀이 문화
1960년대 미국에서는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대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스탠의 가족들이 거실의 TV 앞에 모여 치열하게 드라마나 영화, 예능 프로그램, 뉴스를 시청하는 장면들이 매우 자주 등장합니다. 또 영화관에 가서 다양한 영화들을 감상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제가 또 다른 글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SF 명작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잠깐 등장하여 반가웠습니다.
2) 아폴로 11호 달 착륙
무엇보다 1969년 7월 20일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나 그다음 날 새벽 2시에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달에 하선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보는 장면들을 통해, 당시 미국인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이벤트였는지를 21세기에 한국에 사는 저 역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얼마 안 있다가 바로 달 위를 걷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실제 하선해서 달 위를 걸을 때까지 상당한 준비와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습니다. 또한 1960년대는 록 음악이나 대중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시기인 만큼, 영화에는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이 삽입되며,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즐기던 놀이 문화가 현실감 있게 재현되는 모습들도 보입니다.
3) 미국의 경쟁의식
서두에서 밝혔다시피, 당시 미국이 러시아와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들도 나옵니다. 영화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회적 분위기가 엿보입니다. NASA가 우주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라든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우주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로켓 발사 장면들을 TV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러한 경쟁 의식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4) 1960년대 당시 미국식 가족 문화
서두에 밝혔듯이 영화 속 스탠의 가족은 전형적인 19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NASA에서 일하는 직원이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이자 대학원생이며, 그의 형제들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성장해갑니다. 특히, 가족들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라든지, 뒷마당에서 놀거나 동네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 등은 1960년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결론
영화 '아폴로 10 1/2: 스페이스 에이지 어드벤처(Apollo 10 1/2: A Space Age Childhood)'는 분명 SF 애니메이션입니다만, 일반적인 SF 애니메이션은 아닌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소년을 중심으로 그 당시 미국의 일상과 어린 시절의 꿈이 조화롭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한 연출 방식이나 회상 형식의 감성적인 감독 특유의 연출 방식,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낸 배경과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1960년대 미국의 텍사스주 휴스턴 근교에서 살아간 한 소년의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면서, 그 당시를 어린 시절로 살았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혹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내디딜 때, 38세의 한 미국인이 달 표면에 올라섰다고 언급했던 뉴스 진행자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