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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 역사 속 실화를 담은 걸작 (실존 인물 슈필만, 인간의 강인한 생존, 감동적인 명작)

by 화이트팔콘 2025. 2. 12.

영화 중에서 유독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개인적으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이 연출하여 2002년에 개봉한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ist)'를 소개하겠습니다.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The Holocaust)를 자행하던 당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 1911-2000)이 겪은 실화를 그린 영화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의 명연기를 통해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재 인물과 사건을 거의 충실하게 반영하였고, 전쟁의 참혹함과 연약한 인간의 강한 생존 본능, 그리고 슈필만이 추종하는 쇼팽(Fredric Chopin, 1810-1849)의 음악이 가진 힘을 감동적으로 승화시킨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 역시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어서 그런지 더욱 영화를 생생하고 깊게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덕분인지 2002년 제75회 아카데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같은 해에 칸 영화제에서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고,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 95%와 관객 점수 96%를 달성하는 등 평론과 관객 모두 큰 찬사와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슈필만과 인간의 생존, 감동적인 울림을 알아보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실존 인물, 블라디슬라프 슈필만

 

1) 실제 자서전을 바탕으로 쓴 영화 

 

영화 '피아니스트'는 언급한 대로,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실존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의 자서전 '도시의 죽음(Śmierć Miasta)'을 바탕으로 제작된 실화에 기초한 영화입니다. 슈필만은 폴란드 소스노비에츠 출신의 유대인 피아니스트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에도 폴란드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주로 쇼팽을 비롯한 여러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2) 단조에서 장조로 변환되는 순간 

영화 속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그날도 어김없이 그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쇼팽의 '녹턴 B.49, C# 단조'(Nocturne, B. 49: Lento con gran espressione in C-Sharp Minor)를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그가 연주하던 곡에는 중간중간 밝은 부분의 장조가 섞여 있습니다. 이윽고 그가 밝은 장조 부분을 연주하던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포탄 소리를 마주하게 되고 곧이어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맞게 됩니다. 그의 연주는 완전히 끝을 내지도 못한 채 슈필만은 폭격을 피해 도망가게 됩니다.
 

3) 생존의 시작

1939년 9월 1일에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의 삶은 한순간에 180도 바뀌게 됩니다. 바르샤바를 점령한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강제적으로 바르샤바 게토로 강제로 이주당해야만 했고, 슈필만 역시 가족과 함께 비참한 생활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초반에는 게토 내의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연주자로 일을 이어 나갑니다. 하지만 나치의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이후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될 수밖에 없는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그는 폐허가 된 바르샤바의 건물들 사이에서 나치 세력으로부터 숨어 지내며 끈질긴 생존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4)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진 인간의 강인함

영화는 슈필만이 겪은 현실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실화라는 점에서 더욱 강한 감동과 비참한 현실을 관객에게 느끼게 해 줍니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손을 허공에 대고 상상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으려 했던 그의 투쟁은 그가 단순한 홀로코스트 피해자가 아니라,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인간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각인시키게 해 준 것 같습니다.
 

폐허 속 피아니스트의 고독한 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창작 이미지

2. 인간의 강인한 생존 본능

 

1) 처절한 생존 투쟁

영화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행한 탄압과 폐허가 되어버린 바르샤바 게토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게토에서 정말 운 좋게 살아남은 슈필만은 이후 폐허가 되어 아무도 없는 도시에서 혼자 남겨지며 나치의 눈을 피해 처절한 생존 투쟁을 이어갑니다. 다행히도 그를 도와주는 도로타 부부를 비롯한 몇몇 조력자들 덕분에 가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생활하기도 합니다.
 

2) 폴로네이즈 

머물게 된 한 은신처에서는 우연히 낡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지만, 슈필만은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들리면 바로 발각되기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손을 허공에 대고 쇼팽의 폴로네즈 E♭장조(Chopin Grand Polonaise in E flat major, Op.22)를 상상으로 연주합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 장면에서 연주한 폴로네즈(Polonaise)는 원래 폴란드의 전통 춤곡으로, 주로 밝은 장조의 곡이지만 듣다 보면 어쩐지 애절하고 한이 서린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쇼팽은 사랑하는 조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아야 했고, 폴란드 외세에 의해 짓밟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조국의 춤곡을 작곡하면서 슬픈 마음을 달랬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때문인지 이 장면이 더욱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발각되면 금방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폴로네즈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애절하고도 한이 서려 있는 감정과 동시에 생존을 위한 그의 처절한 투쟁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3) 인간적인 감정과 희망의 도구 

영화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숨 막힐 정도로 명장면에 손꼽히는 장면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모두가 다 악인이 아닌, 인간적인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음악이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생존과 희망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슈필만은 우연히 마주한 한 나치 장교의 지시를 받고, 2년 넘게 제대로 연주하지 못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떨리는 마음으로 쇼팽의 발라드 1번(Chopin Ballade No. 1 in G minor Op. 23)을 연주합니다. 사실 슈필만이 이 상황에서 실제 당시 연주했던 곡은 슈필만이 영화에서 맨 처음 연주한 '녹턴 B.49, C# 단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출에 '발라드 1번' 곡이 차용된 것은 아마 이 곡이 가진 극적인 특성과 효과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3.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명작

 

1) 감독의 어린시절

영화 '피아니스트'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유대인 피아니스트가 홀로코스트라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겪은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초반에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이 영화를 연출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어린 시절 크라쿠프 게토에서 살아남은 경험이 있는 유대인 출신으로, 그의 가족 중 일부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안타깝게도 희생되었습니다. 이러한 감독의 안타까운 성장 과정 역시 영화에 더욱 깊은 현실감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명연기

또한, 주연을 맡은 배우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는 유대인 피아니스트인 슈필만의 역할을 위해 체중을 급격히 감량하고 피아노 연주를 직접 배우는 등 영화 촬영 전부터 철저한 준비와 마음가짐을 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피땀 어린 노력과 그의 생생하고도 진심이 가득 담긴 열연 덕분에 그는 2002년 당시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3) 감명과 깊은 여운 

영화 '피아니스트'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와 예술이 가진 힘을 깊이 있게 조명하게 됩니다. 영화가 개봉한 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회자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한 과거의 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 감명과 깊은 여운을 전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4) 개인적인 느낌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느낌을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는 쇼팽의 단조곡들이 주로 많이 사용되었지만, 쇼팽 폴로네즈 E♭장조(Chopin Grand Polonaise in E flat major, Op.22)나 쇼팽 발라드 2번 F장조(Ballade No. 2 in F Major)와 같은 장조곡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영화 주제가 주제인 만큼 무거운 분위기의 단조곡들은 뭔가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이해되었지만, 가끔 등장하는 오히려 다소 밝은 분위기의 장조곡들이 오히려 섬뜩하거나 유대인들의 안타깝고도 정말 비극적인 현실을 강하게 대비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정말 씁쓸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과거 속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시의 유대인들만큼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과 상황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음악을 통해 끝끝내 희망을 지켜낸 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 명작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압도적인 연출과 스토리, 그리고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는 쇼팽의 음악이 애절하게 어우러져 개봉된 지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나약한 한 인간의 생존과 음악이 주는 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명작으로 자리 잡은 영화 '피아니스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명작인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와 더불어서 홀로코스트를 대표하는 영화로도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