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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영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풍경과 연출, 메시지, 사랑받는 이유

by 화이트팔콘 2025. 2. 17.

스튜디오 지브리가 1995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은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 Yoshifumi Kondo) 감독이 연출하고,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Miyazaki Hayao) 감독이 각본을 담당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로 모험적이고 판타지적인 내용이 많았던 미야자키 감독의 여러 작품에 비하면 상당히 잔잔하고 일상적인 로맨스물이라서 처음 봤을 때 꽤 신선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지브리 작품치고는 한국에서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나, 일본에서는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태어난 젊은 사람들이라도 알 정도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은 지브리 작품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가서 지브리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해놓고 이 작품을 못 봤다고 하면 일본 사람들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학창 시절의 풋풋한 사랑이나, 꿈을 향한 성장을 동시에 그린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감동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의 풍경과 연출, 작품이 담고있는 메시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포일러 경고: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언급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감상 후 읽어주세요!

 

1. 영화의 풍경과 문화, 감성적인 연출

 

1) 영화의 풍경과 색감

영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 '의 풍경과 공간들은 실제 배경과 거의 유사하게 따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94년의 도쿄 근교의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역(聖蹟 ヶ丘, Seiseki-sakuragaoka Station) 주변과 역이 위치한 타마시(多摩市, Tama City)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 일본의 주택가와 골목길을 그대로 반영하였습니다. 또한, 영화 전체에 흐르는 따뜻한 색감이나 잔잔한 배경음악들은 일본 특유의 섬세한 감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 정말 매력적입니다. 바쁜 도시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고, 감동하는 일본인들의 정서가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2) '치큐야(地球屋, Chikyu-ya)'

특히, 영화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골동품 가게이자 공방인 '치큐야(地球屋, Chikyu-ya)'는 예외적으로 타마시가 아니라 도쿄의 작은 카페를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작은 카페나 개인 상점이 오랫동안 운영되며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 정말 부러운 문화입니다. '치큐야(地球屋, Chikyu-ya)'을 보다 보면 정말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공간에서 자신만의 아지트가 생긴 기분일 것 같습니다. 이 가게에서 시즈쿠는 신비로운 고양이 인형인 '바론 남작(フンベルト・フォン・ジッキンゲン男爵, Baron Humbert von Gikkingen)'을 만나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꿈인 소설가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3) 1990년대 일본의 도시 풍경

또한, 시즈쿠가 세이지와 함께 새벽 언덕 위에서 1990년대 도쿄 시내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일본 특유의 도시 풍경을 정말 감성적으로 담아낸 명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도시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도쿄와 타마시가 속해 있는 간토평야의 광활한 평지도 도시의 미적인 모습을 더하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4) 음악

영화 속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주제곡곡은 시즈쿠를 담당한 성우인 혼나 요코(本名 陽子)가 부른 '컨트리 로드(カントリーロード)'입니다. 이 곡은 1971년에 발표된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라는 유명한 곡에다가 일본어 가사를 붙인 번안곡입니다. 덕분에 일본에서 서양 음악이 어떻게 일본식 감성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혹은 합창하는 문화가 매우 발달되어 있는데, 영화 속에서도 시즈쿠가 친구들과 함께 직접 일본어로 번안한 곡을 가지고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순수한 문화가 참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1990년대 도쿄 외곽의 감성을 애니메이션 적으로 재해석한 창작 이미지

2.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

 

1) 꿈을 향한 용기와 도전

이 영화는 제가 생각했을 때, 단순한 청춘 로맨스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의 로맨스물이라면 보통 로맨스에만 부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남녀 간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한 소녀가 자신의 꿈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고군분투하는 성장통의 과정도 같이 보여줍니다. 그래서 작품의 섬세함이나 깊이가 다른 로맨스 작품들에 비해 훨씬 뚜렷하다고 느꼈습니다.
 

2) 세이지와 시즈쿠의 목표

작중 주인공 소년인 세이지는 바이올린 제작자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이탈리아 유학이라는 도전을 선택합니다. 반면, 시즈쿠는 처음에는 미래에 대해 뚜렷한 목표가 없었지만, 세이지를 통해 자극을 받고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게 됩니다. 시즈쿠가 자신의 첫 소설을 완성해 가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밤을 새우며 글을 쓰는 동안 끊임없는 불안과 고민에 휩싸이지만, 결국 그녀는 어찌저찌 끝까지 글을 완성해 냅니다.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습니다. 어찌 보면 묵묵하게 자기 일을, 최선을 다해 끝마치는 대다수 일본인의 인생관 혹은 직업관과도 똑 닮아 있는 것만 같습니다.
 

3) 청춘의 성장과 감정의 변화

시즈쿠는 이야기 내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목표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위주로 주로 읽으며, 평범하게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보내던 그녀는, 세이지를 만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깨닫고 스스로를 시험하고 변화시키려 보려고 합니다. 이는 현실 속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들과도 닮아 있는 듯 보입니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고,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인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 시즈쿠의 아버지는 시즈쿠의 꿈을 지지하며, 동시에 남들과 다르게 사는 삶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충고도 잊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 감성적인 영화이지만, 동시에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이고 와닿는 희망과 용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참 깊이가 있었습니다.
 

4) 일상의 소중함과 작은 행복

이 작품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주는 전형적인 장점입니다만, '일상의 아름다움'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내었다는 점입니다. 작중 배경은 앞서 설명했듯이, 1994년 경의 일본 도쿄 근교입니다. 완전히 90년대 일본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즐거웠습니다. 시즈쿠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조용한 시간이나 친구들과 끊임없는 대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창밖을 보며 고민하는 순간들까지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정말 따뜻하고 감성적인 시선으로 그려내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들은 언뜻 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그저 평범한 순간들이지만, 2020년대에 이 영화를 돌이켜보면 1990년대 도쿄에 굳이 살지 않았어도 정말 이상하게 그곳이 그리워지는 묘한 매력을 가졌습니다.
 

3.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

 

1) 유효한 공감

영화가 개봉한 지 30년이 지났습니다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로맨스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며 성장과 꿈을 향한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 현재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과거 이 작품을 보며 자란 세대들이나, 이 작품이 개봉되었을 때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2022년에는 일본에서 이 작품의 실사 영화가 개봉하면서 다시 한번 원작 애니메이션이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현실적인 캐릭터와 섬세한 감정 표현

특히 현실적인 캐릭터와 감정 표현의 섬세함은 이 작품을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작중 주인공인 시즈쿠와 세이지는 각각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약간의 결함이 있고, 꿈을 찾아서 고민하는 평범한 청춘들로 묘사됩니다. 다른 작품들을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정말 만화 같은 설정들이 많은데, 이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참 현실감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감정선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3)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메세지 

동시에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도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꿈과 사랑,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과장 없이 아주 담백하게 풀어내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여기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과 연출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또한 세이지와 시즈쿠가 함께하는 장면들 역시 따뜻한 색감과 분위기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풋풋한 첫사랑의 모습들을 아름답게 연출되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영화가 개봉된 지 30년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영화 '귀를 기울이면(耳をすませば, Whisper of the Heart)'은 단순한 일본의 로맨스 애니메이션을 넘어서서 꿈과 성장, 사랑,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감성적인 연출, 깊이 있는 메시지가 어우러져 세대를 초월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덕분에 개봉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잔잔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이 작품은 한 번쯤 되새겨볼 만한 지브리스럽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지브리스러운 명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